[프리즘] 석유는 아직 죽지 않았다
'피크 오일(Peak Oil)’이 회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원유 생산량이 1970년께 최고치에 이르렀다 급감하며 유가 급등을 넘어 석유에 기반을 둔 현대 문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2000년대 셰일가스 채굴 기술이 상업화되고 2014년께부터는 기술 발전으로 생산가격이 하락하면서 과장을 보태면 유가 영구 안정론 같은 낙관론이 지배했다. 이 기간 미국은 원유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외교정책이 에너지 확보 부담에서 벗어났으며 SUV와 트럭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기후변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석유의 시대는 가고 친환경 에너지의 시대가 열릴 것 같은 순간 코로나19가 터지고 유가는 배럴당 0달러 이하로까지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의 위세가 약해지자 유가는 방향을 틀어 다시는 오르지 못할 것 같던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일상부터 국제정치까지 세상을 흔들던 석유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듯했으나 코로나19 이후 다시 득세했고 세상의 불투명과 불가측성, 불안감을 상징하는 듯하다. 가주의 개스값은 갤런당 6달러대를 오르내리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가주 정부는 등록 차량 1대당 400달러를 주겠다고 했지만, 돈을 푸는 코로나19 대응법은 임시방편일 뿐 제대로 된 해법이 되기 어렵다. 가주는 구조적으로 개스값 상승 때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가주의 개스 소비량은 뉴욕과 플로리다를 합한 것보다 많지만 정유소는 상대적으로 적다. 전국의 정유소는 140곳이 넘는데 가주에는 19개 정도에 불과하다. 한 두 곳이 파업하거나 가동에 문제가 생기기만 해도 개스값이 튀어 오르는 경향이 있다. 다른 주와 연결된 송유관도 네바다와 애리조나로 가는 두 개뿐이어서 에너지에서는 고립된 섬으로 불린다. 이마저도 보낼 수는 있지만 받을 수는 없다. 받을 수 있다 해도 가주에서 사용되는 개솔린은 연방환경청 요구를 넘어서기 때문에 타주의 개솔린을 실제로 사용하기 어렵다. 다른 주처럼 급할 때는 타주에서 받고 타주가 필요하면 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가주는 개스 소비량은 많지만 가격 안전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풀려난 거대한 유동성에 물가가 7%대로 오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면 가주는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개스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큰 데다 가격이 오르면 다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2020년 기준 가주에 등록된 차량은 1420만1400대였다. 2위인 텍사스가 800만 대 조금 넘으니 가주에서 개스값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차량 1대당 400달러를 주면 어림 계산해도 모두 50억 달러 규모가 풀린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먼 돈이다. 코로나19 돈 풀기와 비슷한 맹점이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구조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6달러대 개스값이 계속되지 않는다 해도 최근 개스값 폭등은 석유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환급 이상의 에너지 정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친환경 에너지로 간다 해도 전환기에는 석유 정책이 필요하다. 2022년 가주에 등록된 전기차는 42만5300대다. 전기차 전환에는 가속도가 붙겠지만 친환경 에너지 속도전이 안정적인 에너지 대책의 전부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블록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에너지의 섬’ 가주는 다른 주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프리즘 석유 가주의 개스값 친환경 에너지 6달러대 개스값